AI로 피부를 평가한다는 것

피부의 중증도에는 정답이 하나가 아닙니다. 피부과 전문의가 대학병원과 의료 AI 회사를 거치며 마주한 '의사의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그리고 이를 AI로 풀어온 이야기입니다.

AI로 피부를 평가한다는 것

지난 글에서 저는 피부를 재는 '측정'이 생각보다 많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장비가 못 미덥다면, 훈련된 의사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나?"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AI 연구를 하면서, 그 '의사의 판단'조차 하나의 정답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마주하게 됐습니다.

제 첫 논문은 '입술의 피부암'을 감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 제 첫 연구 주제는 입술에 생기는 드문 피부암을 AI로 감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AI로 질환을 '진단'하는 연구가 막 나오던 시기였고, 흔치 않은 종류의 피부암까지 구별해낸다는 점을 인정받아 피부과 분야의 주요 학술지(영국피부과학회지, BJD)에 실릴 수 있었습니다.

진단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편이었습니다. '피부암이냐 아니냐'처럼 정답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진단도 확률에 가깝지만요.) 그런데 이런 진단 연구는 이미 빠르게 포화되고 있었고, 저는 다음 질문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로 '중증도 평가'였습니다.

'중증도'에는 정답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여드름과 아토피피부염의 중증도를 AI로 평가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새로움을 인정받아 좋은 학술지에 게재됐지만, 정작 연구를 하며 부딪힌 벽은 따로 있었습니다.

AI를 학습시키려면 '정답 데이터(ground truth)'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 피부과 의사에게 같은 사진을 보여주고 중증도를 매기게 했는데, 서로 답이 갈렸습니다. 대부분은 비슷하게 겹쳤고 완전히 동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예를 들어 4단계 중 누군가는 3단계로, 누군가는 2단계로), 그럼에도 '단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피부암이냐 아니냐'와 달리, 중증도는 여러 전문가의 판단이 하나의 분포로 흩어지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진단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고, 제 연구는 바로 그 지점을 푸는 작업이었습니다.

이건 피부과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의료 AI 회사(루닛)에서 병리 분석 AI를 만들 때도 똑같은 벽을 만났습니다. 병리과 의사들이 조직 사진에 표시한 정답을 학습에 썼는데, 그 정답조차 의사마다 달랐습니다. 같은 조직을 두고 누군가는 전암성 병변으로, 누군가는 악성 병변으로 판단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제가 피부과에서 마주했던 문제는 피부과만의 것이 아니라, 의학 전반에 깔려 있는 보편적인 문제였다는 것을요. 저는 피부과 AI 연구와 병리 AI 연구를 거치며, 이 '흩어지는 정답'을 AI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경험으로 익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핵심은 AI에게 하나의 엄밀한 정답을 못 박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의료 현장에 존재하는 판단의 분포, 말하자면 '확률'로 학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 한 명이 틀렸다고 지우는 대신, 여러 전문가의 판단이 이루는 폭을 그대로 학습의 재료로 삼는 방향이지요. 저는 서울대병원과 루닛에서 이런 방식으로 AI 모델을 개발했고, 이 접근이 중증도 평가에는 더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노하우를 지금 인스킨뷰의 AI 모델 개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본문에서 언급한 연구입니다.

피부과 AI 연구

병리과 AI 연구